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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9 19:16 수정 : 2012.01.09 19:16

서울시교육청이 결국 학생인권조례의 재의를 요구했다. 민선 교육감이 시민과 한 약속을, 정부가 파견한 교육감 직무대행이 멋대로 내던져버린 셈이다. 공약 파기야 이 정부의 태생적 습관이라 해도, 다른 민선 기관장의 공약까지 강제로 파기하는 만용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시민을 개밥에 도토리쯤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짓이다.

오죽 명분이 없었으면 그랬을까마는, 시교육청은 심지어 헌법, 지방자치법, 지방교육자치법, 초중등교육법 등 온갖 법률을 끌어대며 정당성을 강변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인권조례는 이미 시행중인 경기도나 광주 등의 인권조례와 다를 게 없다. 집회의 자유에서 차이가 있지만, 학교가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했으니 오십보백보다.

게다가 시교육청의 핑계는 한결같이 ‘우려가 있다’ ‘그런 소지, 가능성이 있다’ 따위였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그릇된 성 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거나 폭력 금지 조항은 교육벌을 금지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투다. 과잉해석에다 왜곡까지 했다. 결국 이 정부의 이념이나 지향, 믿음 따위에 따른 셈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중앙정부의 의지에 따라 자치단체의 자율성·자치권은 언제든 모두 박탈당할 수 있다. 충돌하는 게 소신과 믿음이라면, 그때 가장 중시해야 하는 건 시민과의 약속, 시민의 선택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의 기본정신이다. 인권조례는 곽노현 교육감이 내세운 공약이고, 박원순 시장이 거듭 공언한 약속이다.

이번 재의 요구로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국제적 조롱을 받게 됐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최근 인권조례 제정을 환영하는 서신을 시교육청,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보냈다. 유엔은 특히 체벌 금지, 사생활 보호, 표현과 양심의 자유 보장, 성적 지향 등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은 바로 이 조항들을 이유로 조례를 거부했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근본주의 종교집단처럼 종교적 신념과 믿음에 휘둘리는 이 정부야 그렇다 치자. 문제는 시의회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다. 이들이 온전한 상식만 견지해도 아이들이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는 자율적 인간으로 커가는 발판은 마련된다. 이 정부의 각성보다 민주당 쪽의 분발에 더 기대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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