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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란 제재’ 협상, 주권국가답게 당당하게 임해야 |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 일행이 어제 방한했다. 이들은 18일까지 우리 정부와 이란 제재 방침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아인혼 조정관은 지난 연말 미 의회에서 통과시켜 곧바로 발효한 ‘국방수권법’을 근거로 우리 정부에 이란산 원유 수입 자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경제적 파장을 우려하면서도 미국 쪽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굴복하는 것으로 재고해야 한다.
미국이 발표한 이란 추가제재의 핵심은 이란에 대한 원유 금수 조처다. 애초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국방수권법상의 예외 및 유예조항 적용을 받아낼 듯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물러서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이 동참 의사를 밝혀 우리도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구체적인 수입 감축 규모나 일정을 밝힌 나라는 아직 없다. 이란산 원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나 2위 수입국인 인도는 아예 제재 동참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란산 원유는 국내 수입 원유의 10%가량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이런 물량을 갑자기 줄이게 되면 경제적 파장이 크다. 당장 국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이란 시장에 진출한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이란 정부의 보복조처 등을 우려한다.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들어오는 이란산 원유를 당장 대체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정유사들은 새 수입처를 찾거나 급하게 현물시장에서 대체물량을 확보할 경우 전체 수입 원유 가격의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동참하는 대가로 국내 물가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안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 조처다. 미국이 제재의 근거로 삼고 있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도 심증뿐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 주도의 중동질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미국이 바라는 ‘강력하고 통일된 행동’을 아직 아무도 공표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만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앞장서 동참할 필요는 없다. 한-미 동맹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경제주권과 에너지안보마저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이란 제재에 동참할지는 적어도 국제사회의 뚜렷한 공감대를 확인한 다음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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