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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희태 의장, 비겁하고 추하다 |
외국 순방을 끝내고 어제 새벽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해 “나는 모른다” “4년 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고 딱 잡아뗐다. 기자회견에 걸린 시간은 불과 3분이었고 보도진의 질문에도 일절 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온갖 비난 속에서도 외국에 머물다 돌아온 데 대한 미안함도, 국민들의 궁금증에 성실히 답하겠다는 겸손함도 없었다. 회견의 내용과 형식 모두 오만하고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회견에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4월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총선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출마를 해도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불출마를 마치 대단한 결단인 양 포장해 내놓은 것 자체가 실소를 자아낸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겠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박 의장이 해야 할 일은 그런 당연한 원론을 되뇌는 게 아니라 국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한 당사자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책임을 철저히 외면했다.
박 의장은 마지막까지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부질없어 보인다. 그가 의장직을 사퇴하지 않는다고 버텨도 이미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권능을 잃었다. 야당은 물론 친정인 한나라당마저도 그를 더는 국회의장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는 박 의장 대신 정의화 부의장이 사회봉을 잡기로 했다. 민주당은 그의 의장직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한나라당 역시 그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야 원내대표들이 만나서 현명하게 처리하기 바란다”고 말한 것을 두고 사퇴 촉구 결의안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박 의장은 계속해서 최악의 길만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박 의장이 이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법조인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자신이 돈봉투 살포에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우니 잘만 버티면 법망을 빠져나올 수 있다고 여기는 눈치다. 따라서 검찰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어떤 성역도 두지 말고 진실 규명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필요하면 현직 국회의장을 직접 소환조사하는 일에도 결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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