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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남의 ‘천안함 발언’, 조선일보가 날조했나 |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기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필요로 이뤄졌다’고 밝혔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오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정남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당사자인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이 “내가 받은 이메일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고, (김정남한테서)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도 없다”고 부정했다. 조선일보 보도의 근거가 된 <월간조선> 기사에도 김정남이 그런 말을 한 대목이 없다. 조선일보는 김정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근거로 천안함 사건을 북의 소행인 양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언론의 기본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에 나온 ‘천안함 발언’은 연평도 폭격과 관련된 것이다. 월간조선을 보면, 김정남은 연평도 포격에 대해 “북조선은 서해 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치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김정남이 천안함 사건을 놓고 이렇게 말한 것으로 둔갑해 있다.
황당하기는 동아일보도 못지않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 보도 다음날 사설을 통해 김정남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핵무기 보유와 선군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꾸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라고 단언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올렸다. 고미 위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최소한의 절차도 생략한 채 월간조선의 내용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짜깁기한 것이다.
두 신문의 오보는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국내 종북좌파 세력은 김정남의 이런 폭로를 듣고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계속 주장할 것인가”라고 공격한 데서 의도성이 짙게 풍겨난다. 천안함 사건은 누구의 소행인지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쟁이 여전히 진행중인 사안이다. 국회에선 한나라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의 발언을 시비 삼아 재판관 선출안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그 결과 200일 가까이 헌재 재판관 공백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두 신문이 냉전적 수구논리로 우리 사회의 이성적 비판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오보를 한 것이라면 이는 언론이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두 신문은 보도 경위를 소상하게 밝히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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