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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본주의 위기와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 |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최대 화두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세계화를 통한 인류 번영을 주창해온 다보스포럼 창설자 클라우스 슈바프는 “나는 자유시장경제체제 신봉자이지만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당사자들이 통절한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시장만능 자본주의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포럼 참석자들은 올해 지구촌을 뒤흔들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소득격차를 꼽았다.
2008년 시작돼 현재진행형인 세계 경제위기는 자본의 탐욕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금융규제 완화가 완전한 시장을 가져올 것이란 환상은 시장 실패의 재앙으로 귀결됐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금융권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금융권은 오히려 도덕적 해이에 빠져 ‘월가를 점령하라’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낙수효과라는 미명 아래 세금을 감면해야 소비도 투자도 늘어 모두가 풍요해질 수 있다는 주장 또한 허구임이 판명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국제 투자자,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1209명의 조사에서 70%가 현행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작금의 위기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개혁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논의만 무성할 뿐 현실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권을 쥔 극소수 외에 절대다수의 바람은 사람이 시장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되며, 시장이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곧 새 시대의 핵심적 요구는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살려나가되 탐욕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고 나날이 커지는 삶의 불안정성과 불균형의 틈을 메워야 한다. 정부가 과감하게 시장에 개입하고 분배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1 대 99로 상징되는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정치권이 시장 실패의 치유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월가 점령 시위 같은 분노의 파도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자증세를 꺼낸 것도 그런 맥락이다.
1 대 99 사회에 대한 분노는 우리 사회에도 깊게 배어 있다. 이런 분노를 치유하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경제민주화가 긴요하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은 균형있는 국민경제와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력 남용 방지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융자본보다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여타 부문을 고사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제구실을 방기하고 허망한 성장지상주의로 역주행한 결과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규제완화로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체급 구분을 없앤 꼴이니 재벌 독식은 심화할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의 공헌이라면 재벌에 기댄 성장지상주의로는 안 된다는 학습을 혹독하게 시켜줬다는 점이다. 탐욕스런 자본의 고삐를 풀어 승자독식의 벌거벗은 사회가 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게 시대정신이다. 여야 정치권이 다투어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재벌과 기득권층의 공고한 성채를 뚫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에만 맡겨둔 채 방관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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