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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나라당의 ‘수구 탈피’ 노력을 주목한다 |
한나라당이 어제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이름 붙인 새 정강정책을 선보였다. 1994년 미국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내걸었던 ‘미국과의 약속’에서 작명의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공화당은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약한 ‘미국과의 약속’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의 하원 40년 지배체제를 허물었다. 시대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내용과 방향은 전혀 딴판이지만, 시선을 세상의 변화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열망과 결기가 엿보인다.
정강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기존의 ‘큰 시장, 작은 정부의 활기찬 선진경제’ 조항을 삭제하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경제정책의 중심을 이명박 정부의 성장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에서 복지, 양극화 해소, 고용 확대로 옮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승자독식의 정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분출하는 가운데 양극화 해소와 복지를 외면하고는 양대 선거에서 명함조차 내밀기도 어렵다는 절박함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선 이런 변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대북정책도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북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는 부분이 빠지고, ‘유연한 대북정책’을 명문화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붕괴론에 입각해 대북압박정책으로 일관한 결과, 북한의 변화는커녕 안보불안만 초래한 점을 생각하면 현명한 정책 전환이다. 이런 정책 전환이 성공하기 위한 관건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의 성과를 생산적으로 수용하면서 초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터져나오는 당 안팎의 냉전 수구세력의 반발을 억제하고 그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느냐도 과제이다.
교육 문제에서 ‘수월성과 경쟁력 제고’ 개념을 없애고, 잠재력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인성교육의 확대를 강조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공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한 처방이다.
이제 정강정책으론 한나라당의 ‘수구정당’ 이미지는 탈색됐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려면 구체적 정책행보로 뒷받침돼야 한다. 정강정책의 변화가 선거 때 유권자를 홀리는 ‘마술’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정당 탄생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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