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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수 잘못’에 왜 소액주주들만 불안에 떨어야 하나 |
한화그룹의 주력기업 ㈜한화의 소액주주들은 지난 주말 내내 불안에 떨다가 어제 정오 무렵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화 주식이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올랐다가 거래소 쪽의 긴급진화로 무마된 것이다. 이번 소동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측근의 횡령·배임 혐의를 한화 쪽에서 늦게 공시하는 바람에 벌어졌다. 한화가 비록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하긴 했으나, 총수경영체제가 수많은 주주들한테 얼마나 큰 잠재적 위협인지를 극명히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화는 지난 3일 거래소시장 마감 뒤 3시간이 지나서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 공시를 했다. 김승연 그룹 회장과 주요 임원 3명이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횡령·배임액이 너무 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폐지 심사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심사 대상에 들어가면 곧바로 주식거래가 정지된다. 거래정지는 한화 주식이 사실상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한화 주주들에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10대 그룹의 상장계열사가 상장폐지 위기에까지 이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우려한 거래소는 유례없이 일요일 오전에 긴급회의를 소집해 한화를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화 쪽에서 부랴부랴 제출한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 개선방안을 단 두시간가량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거래소가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신속한 결정을 내렸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듯하다. 거래소가 한화한테만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해 허겁지겁 덮어준 탓에 형평성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거래소는 지난해 4월 관련 규정을 개정해 대주주나 임원의 횡령·배임 혐의는 확정판결이 아니라 검찰 기소 단계에서부터 공시하며, 횡령·배임액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상장폐지 심사를 받도록 했다. 지금까지 20여곳의 크고 작은 상장기업들이 이 규정을 적용받아 불이익을 당했다. 그런데 한화 쪽에선 “규정 개정 사실을 모른 채 실무적인 업무 착오”로 늑장공시를 했다고 말한다. 한화와 거래소 모두 한심한 준법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이번 사태의 뿌리에는 재벌의 총수지배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한자릿수 지분으로 사실상 경영전권을 휘두르는 총수지배체제에선 개인의 잘못이 시장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시가총액 1000조원을 넘어선 우리 주식시장이 재벌 총수의 전횡에 따른 ‘오너 리스크’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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