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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돈봉투와 거짓말로 분칠한 ‘도덕적 완벽 정권’ |
박희태 국회의장이 어제 돈봉투 파문과 관련해 사퇴했다. 1948년 제헌의회 이래 네번째의 국회의장 중도 퇴진이다. 이승만, 이기붕, 박준규씨가 각각 초대 대통령 취임, 4·19혁명 뒤 제명, 재산공개 파문으로 물러났지만,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어 물러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이다. 의정 사상 가장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일이다.
박 의장은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물러날 때까지 치졸하고 무책임했다. 고승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구체적인 돈봉투 수수 정황을 폭로했는데도 외교적 결례를 명분으로 도망치듯 외국 방문을 떠났다. 귀국해서도 사퇴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비로소 돈봉투를 돌린 비서가 양심선언을 하고 나서야 더는 버티지 못하고 대변인을 통해 5줄짜리 사퇴의 변을 내놓고 잠적했다.
돈봉투 사건의 또다른 주역인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더욱 뻔뻔하고 가증스럽다. 그는 고 의원이 돈봉투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자 “그와 일면식도 없다. 말도 한번 섞어본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박 의장의 전 비서인 고아무개씨는 양심선언에서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김 수석을 겨냥했다.
국회의장과 정무수석은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 요직이다. 국회와 정당 관련 업무를 대통령에게 보좌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정무수석은 입법과 관련한 대통령의 의중을 국회에 전하고, 국회의장은 이를 입법 과정에 반영하는 게 통례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고 국리민복을 꾀하는 이런 자리를 부정과 무책임, 거짓말 ‘선수’들이 맡아왔다니 얼마나 한심하고 참담한 일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의 몸통이랄 수 있다. 남은 대선자금이 돈봉투 살포 때 흘러들어갔느냐 여부는 검찰이 밝힐 문제라고 치더라도, 부도덕의 극치인 두 사람을 지금의 위치에 발탁한 사람은 이 대통령 자신이다. 대선 운동 때부터 6인 원로회의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박 의장은 18대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이후 이 대통령의 전폭 지원 아래 원외 당대표와 양산 재보궐선거 출마, 국회의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당 대표 선거의 좌장이었던 김효재 의원은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도덕과 완벽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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