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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전한 색깔론, 새누리당 뭐하러 당명 바꿨나 |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다짐했던 개혁과 쇄신은 헛된 말장난이었다. 알맹이는 그대로 둔 채 포장지만 그럴듯하게 바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그대로 적중했다.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헌법 존중,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에 대한 신뢰, 다양성 추구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들이 철저히 무시당한 참담한 결과다.
색깔론과 이념적 편가르기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을 상징해온 트레이드마크였다. 새누리당이 진정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하려면 무엇보다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점에서 조용환 후보자의 선출 문제는 새누리당 변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었다. 천안함 사건의 북한 소행 여부에 대해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그의 발언을 꼬투리 잡은 것부터가 저열하기 짝이 없는 이념공세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꼬리 3년 묵혀도 황모 되지 못한다는 속담은 전혀 그르지 않았다.
조 후보자의 선출 거부 사태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본질과 한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의 새누리당이 박 위원장의 1인 지배 정당이라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투표 결과를 박 위원장의 뜻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조 후보자의 선출 문제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닫음으로써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 기류에 암묵적 지지를 보냈다. 조 후보자 문제뿐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 인권, 양심의 자유, 의견의 다양성 등 우리 사회의 기본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줄곧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결국 지금 새누리당에서 벌어지는 물갈이 싸움은 당 체질의 본질적 변화와는 무관한 ‘그 나물에 그 밥’ 식의 아웅다웅일 뿐이다.
민주당 역시 입이 열 개가 있어도 말할 형편이 못 된다. 제대로 된 협상력도, 상황판단 능력도 없이 여당에 끌려다니다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뒤늦게 새누리당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것부터가 스스로 무능을 실토하는 일에 불과하다. 특히 ‘퍼주기 협상’이나 하면서 번번이 여당에 당해온 김진표 원내대표는 더는 그 자리에 머무를 자격이 없다. 이번 헌재 재판관 선출 부결 사태는 국회 역사상 길이 수치스런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씁쓸한 기록에 민주당도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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