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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0 19:07 수정 : 2012.02.10 19:07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은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결국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대법원이 어제 발표한 연임 법관 113명의 명단 어디에도 서 판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법원이 밝힌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 사유는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구실일 뿐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진짜 탈락 사유는 ‘가카의 빅엿’ 등의 글로 ‘각하’를 욕보인 죄, 촛불재판에 불법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을 앞장서 규탄한 죄,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해 “불편하지만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죄 등이다. 법원 수뇌부와 집권세력은 서 판사의 행동을 묵과하지 않고 재임용 탈락 조처로 철저히 보복했다.

서 판사 재임용 탈락은 다른 판사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수뇌부의 눈밖에 벗어나는 ‘튀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지 서 판사와 똑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위협이다. 법관의 신분은 이제 ‘10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 조처에는 법원을 온통 온순하고 순치된 양떼들로 채우겠다는 법원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만연한 것은 사실 서 판사와 같은 판사들의 존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판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오만함,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재판 진행 등에 있다. 법정에서 재판 당사자들에게 막말을 하고 이들의 주장을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하는 일부 판사들이야말로 사법부 불신의 근원이다. 하지만 서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은 그가 “항상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법관”이라고 전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 불신의 근원에 메스를 대기는커녕 ‘괘씸죄’에 걸린 판사를 내치는 일에만 골몰했다.

사법부의 물구나무선 풍경은 신영철 대법관과 서기호 판사의 엇갈린 운명에서도 극명히 확인된다. 법관의 독립성을 무시한채 촛불재판에 불법개입한 신 대법관은 꿋꿋이 살아남아 이번에 서 판사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대법관회의의 일원으로까지 참여했다. 이런 역설적 비극이 바로 사법부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주목되는 것은 젊은 판사들의 인식과 행동이다. 재임용 제도가 법원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판사, 윗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의견을 내는 법관들을 솎아내는 도구로 악용되는 한 재임용 탈락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판사는 아무도 없다. 법관 재임용 문제는 단지 서기호 판사 한 명이 법복을 벗고 안 벗는 문제를 넘어선다. 판사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심사기준, 객관적이고 투명한 재임용 절차 마련은 사법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지금처럼 원칙도 심사기준도 모호하기 짝이 없는 ‘부러진 인사’를 방치하는 한 사법부는 ‘부러진 신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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