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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대의 아픈 속살, 김제동 토크콘서트 |
김제동의 ‘토크콘서트’가 관객 10만명을 훌쩍 넘겼다. 2009년 12월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150석짜리 소극장 이랑씨어터에서 시작한 지 105회째 만이다. 이젠 소극장이 아니라 종합체육관 같은 곳에서 열려도 자리 얻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됐다. 그의 진정성과 탁월한 언변에 기댄 바 크지만, 시대적 상처가 그만큼 깊고 컸던 까닭이 크다.
2009년 12월은 그가 <한국방송>의 ‘스타골든벨’ 진행자에서 퇴출당한 직후였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노제의 사회를 본 것이 문제였고, 이 정권의 비정에 대한 대담한 직설과 풍자가 문제였다. 이후 그는 <문화방송>은 물론 심지어 유선방송 <엠넷>에서도 퇴출당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려는 그의 태도가 결국 한국인에겐 금시초문이었던, 이 이야기 마당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한 것이다.
굳이 갈래를 따진다면 시사개그일 것이다. 가령 이렇다. “여기 계신 검찰 경찰 정보과 아저씨들은 잘 들으세요. 내 고향은 경북 영천입니다. 포항 바로 옆입니다. 나 그런 사람입니다.” “시민으로선 불행한 시대이지만, 코미디언으로선 축복받은 시대.” 하지만 무작정 정권의 실정과 가진자의 탐욕을 풍자하는 것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김씨는 자신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도 대개는 실정과 탐욕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것도 제 이야기가 먼저다. 따라서 이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염증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누리지 않는다. 그는 제 상처와 아픔을 털어놓는 데 익숙할 뿐이다. 공감과 위로가 더 깊어지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자신을, 이웃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일종의 무당이라고 했다.
정치권력이 토크콘서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정권은 김제동의 방송 마이크를 빼앗았듯이, 서민의 발언대를 없앴다. 사회적 입인 방송을 정권의 나팔로 만들었고, 사적 소통수단인 사회관계망서비스까지 통제했다. 상처 받은 그래서 할 말이 많은 이들의 입은 틀어막고, 정권의 나팔만 요란하게 울리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정권의 이런 일방통행과 불통은 여전하다. 한국방송이 이 콘서트를 정치행사로 규정해 공연장 대관을 철회할 정도다. 김씨 말대로 “정치가 코미디를 그만둬야 코미디가 정치를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그럴 생각이 없다.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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