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1 21:06
수정 : 2005.07.21 21:08
사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특수 비밀도청팀을 꾸려 정계·재계·언론계 핵심인사들의 식사자리에서 오간 대화내용을 도청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때를 맞춰 <문화방송>이 1997년 대선 직전 한 재벌그룹 고위인사와 중앙언론사 최고위층의 대선자금 지원 논의 대화를 담은 도청 테이프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이제 불법도청의 진상을 낱낱이 밝힐 수 있는 계기가 확실히 마련된 셈이다.
불법도청에 대한 국민의 공포는 실로 크다. 내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내용을 정보기관이 엿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더구나 전화 도청·감청의 차원을 넘어 정보요원들이 음식점이나 술집까지 출장나가 도청기를 꽂고 옆방에서 대화내용을 은밀히 엿들었다는 주장에 접하고 보니 실로 등골이 오싹하다.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나선 정부가, 그것도 한편으로는 통신비밀 보호법을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도청을 스스럼없이 자행했다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밝혀야 할 대목은 수없이 많다. 불법도청이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이뤄졌으며, 이를 보고받은 사람은 누구이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도청조직이 그 뒤 확실히 해체됐는지, 불법도청 테이프들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실제 시중에는 1997년 대선이 끝난 뒤 안기부에서 도청 테이프가 다량으로 흘러나왔으며, 일부 전직 안기부원이 당사자와 접촉해 ‘거래’를 시도했다는 소문까지 있는 만큼 그 진위도 확실히 가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방송>이 입수한 도청테이프는 진상 파악을 위한 중요한 고리로서의 의미가 크다.
어찌 보면 불법도청을 당한 사람들은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대화내용이 공개되는 게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벌이나 언론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비중에 비춰볼 때 대화 내용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은 사회정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재벌-언론-정치권의 은밀한 삼각 커넥션을 밝혀내 이들의 유착관계를 뿌리뽑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검찰이 직접 나서 이런 숱한 의문점들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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