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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는 무모한 도박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3월15일 발효된다고 한다. 엊그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협정 이행에 필요한 법적 요건과 절차를 서로 마무리했다며 발효 일자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협정의 위험을 우려하는 국민 여론과 야당의 반대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또다시 국론이 갈리게 됐다.
미국 언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협정 발효를 서두른 것은 우리 정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4월 총선과 협정 발효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두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국회에서 지난해 11월 여당 단독으로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한 뒤부터 발효 일자를 앞당기려는 노력만 해왔다. 발효 준비상황을 점검한다든지 보완대책을 수립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협정에 대한 여러 의혹과 우려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협정 이행 준비가 부실하다. 한국은 협정 발효 요건을 맞추려고 세제·환경·보건·지적재산권 등 광범한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법률을 무려 26개나 고쳤다. 협정 이행 과정에 충돌하는 법률이 확인되면 추가로 바꿔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판단도 협정에 계속 구속되어야 한다.
반면에 미국은 수입 관세와 하역수수료 같은 경미한 사안을 조정하는 4개 법률만 바꿨다. 또 앞으로 협정과 충돌하는 모든 자국 법령은 그대로 유효하며, 협정에 우선한다는 조항을 이행법률안에 못박아뒀다. 실제로 미국은 협정과 충돌하는 법령도 버젓이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개성공단 제품의 교역을 민형사상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행정명령 13570호’가 그렇다. 협정의 법적 효력과 지위가 이처럼 기울어진 상태에서 발효된다면 이익의 균형은 원천적으로 무너진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개정도 불투명하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양국간 서비스투자위원회를 구성해 재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이 기구에선 재판의 투명성을 높인다든지 단심제를 개선하는 정도만 논의할 수 있을 뿐이다. 폐기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정부는 협정 발효로 경제영토가 넓어져 국익 증대의 발판을 얻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검증되지 않은 얘기다. 앞서 미국과 협정을 맺은 나라들의 경험에 비춰보면, 국민 주권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협할 소지가 크다. 진정한 국익의 관점에서 협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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