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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대통령, 임기말을 ‘정쟁’으로 지새우겠다는 건가 |
임기를 1년 남긴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는 매우 소박하다. 지난 4년을 겸허히 성찰해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고, 그동안 벌여놓은 일을 원만히 마무리함과 동시에 총선·대선 등 각종 선거를 중립적으로 공정히 관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은 이런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는 성찰할 대목에 자화자찬했고, 사과할 일은 변명으로 피해 갔으며, 정치적 중립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에 정쟁의 한복판에 불꽃을 지고 뛰어들었다.
친인척·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사과’나 ‘사죄’ 등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고작 “가슴이 꽉 막힌다”느니 “국민께 할 말이 없다”는 정도였다. 이 대통령의 어법으로는 이것이 사과라고 청와대 쪽은 설명하니 국민으로서는 엎드려 절 받기다. 더욱이 내곡동 사저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 왜곡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제가 챙기지 못해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명했으나 사실과 다른 발뺌이다. 이 대통령이 내곡동 터를 방문하고 구입을 승인했다는 것은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의 증언에서도 확인된 터다. 내곡동 사저는 이 대통령이 ‘챙기지 못해’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챙겼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다.
이 대통령의 회견을 관통하는 또다른 핵심 단어는 ‘오해’였다. 편중 인사와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해야 효과적”이라느니 “특별히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 정부의 친재벌적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반기업 정서는 나쁘다”는 엉뚱한 말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마지못해 ‘국민의 눈에 그렇게 비치면 고치겠다’고 말했으나, 잘못에 대한 시인 자체가 없으니 임기말까지 이대로 가다가 끝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이 회견에서 가장 역점을 둔 대목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주 해군기지 등에 대한 야당 지도자들의 과거 발언록을 끄집어내 공격한 것이다. 특별회견의 방점도 사실상 여기에 찍혀 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정책의 정당성 옹호지만 실질적 내용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술이다. 대야 공격의 선봉장을 자처함으로써 여당 내에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야 공세 지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공격을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야당 지도자들이 과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말꼬리 잡기 식의 치졸한 정쟁에 몰두하는 것이 옳은지는 회의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만 해도 야당 지도자 발언록을 뒤지는 일은 새누리당 당직자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이라면 협정의 내용을 뜯어보고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 힘쓰는 것이 도리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이 각별히 요청되는 시기에 정반대 행보로 정국을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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