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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2 21:09 수정 : 2005.07.22 21:10

사설

불법도청으로 다른 사람들의 대화내용을 은밀히 엿들은 행위는 분명히 비열하고도 추악하다. 하지만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에서 드러난 삼성과 중앙일보사 최고위층의 대화내용은 도청수법의 추악성에 대한 분노를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고 위선에 가득차 있다. 대선 후보들을 한사람씩 꼽아가며 지원할 돈의 규모와 방법을 상의하고, 나라의 기간산업이라 할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공작’을 논의하는 대화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현직 검찰간부들에게 거액의 ‘떡값’을 뿌렸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재벌이 응당 갖춰야 할 사회적 책임의식이나, 언론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은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게 ‘막후 공작’ 차원에서 모색되고 검토되고 있을 뿐이다.

19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가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중앙일보도 그 뒤 자신들의 편파보도 사실을 시인하기는 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된 뒤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기반성과 속죄의 뜻에서 나왔다기보다는 홍 회장의 구속이 ‘정치 보복’임을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됐을 뿐이다.

반성이 없으니만큼 교훈도 없다. 홍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주미대사로 전격 발탁된 것 자체가 단적인 사례다. 홍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 전달에 실제로 개입했는지를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가 편파보도 과정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일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언론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방안을 모색한 대화내용이 갖는 의미는 더욱 심각하다. 삼성이 기아차 인수를 위한 복안을 공론화하면 언론을 통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정치권은 배후에서 밀어주겠다는 식의 ‘삼각 협력관계’야말로 재계-언론계-정계 커넥션의 극치다. 당시에도 삼성이 기아차 인수를 위해 막후공작을 벌였다는 소문은 무성했다. 기아도 “삼성의 공작으로 기아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영 실패자의 무책임한 변명쯤으로 치부됐다. 이제 삼성의 기아차 인수공작 실상을 밝혀줄 중요한 실마리가 제공된 만큼 그 전모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97년 외환위기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게 기아사태였기 때문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은밀히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재벌들의 물밑공작을 막기 위해서도 이는 절실한 과제다.

이번 불법도청 파문의 심각성은 홍 회장이 단지 국내 중앙 일간지 사주에 머물지 않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대미관계를 총책임지고 있는 주미대사라는 점에 있다. 아마도 국제 사회는 흥미진진하게 이번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내심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제적 망신의 한복판에 외교관의 꽃이라 할 주미대사가 자리잡고 있으니 실로 낯뜨거운 노릇이다.

그런데도 홍 대사는 “오래된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말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일인가. 홍 대사는 자신이나 국가의 위신을 위해서도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으면 한다.

홍 대사 파문과는 별개로 안기부의 불법도청 진상은 하루빨리 밝혀져야 한다. 이미 전직 안기부원의 증언에 의해 당시 책임자들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당사자들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기 급급하다. 어차피 이들이 진상을 털어놓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국정원의 자체조사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검찰이 직접 나서서 신속하고도 속시원하게 진상을 밝히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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