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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7 19:10 수정 : 2012.03.07 19:10

어제 새벽, 제주 강정마을에선 비상사이렌이 울렸다. 주민들은 비장했고, 경찰은 긴장했다. 결국 구럼비 바위 쪽에서 굉음이 울렸다. 주민들은 통곡했다. 30만~10만년 전 사이에 형성된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는 그렇게 파괴되기 시작했고, 제주 세계지질공원의 속살은 찢겨나갔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강정마을 주민이 아니어도 분노가 치민다.

1947년 3월, 주민들의 3·1절 시위에 대한 경찰의 발포는 이듬해 4·3 항쟁으로 확산됐다. 그때 육지에서 건너간 군대는 제주도민을 상대로 토벌작전을 벌였고, 26만 주민 가운데 1만4000여명이 희생됐다. 그로부터 65년 뒤, 강정마을의 3월은 화염으로 자욱하다. 육지 경찰 600여명이 주민 1000여명과 맞선다. 2년여간 300여명이, 올해에만 109명이 연행됐으니, 폭파음이 4·3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건 자연스럽다.

제주도 해안의 용암 바위는 특별하지 않다. 195㎞ 해안선 대부분이 현무암 바위다. 그러나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처럼 길이 1.2㎞, 너비 250m의 통돌로 이루어져 있거나, 20여곳에서 용천수가 솟아올라 바위 습지대를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천연기념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높다 하여, 구럼비 바위 폭파를 도민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대해 가져왔던 주민들의 마지막 믿음과 기대가 배반당한 데 따른 것이다. 구럼비 폭파는 한계점이었다.

엊그제 제주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그리고 제주도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대표가 해군에 공사 일시 중지를 요청한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제주도민을 대표하는 이들의, 설계에 대한 공정한 재검증을 요구하는 마지막 호소였다. 그러나 해군은 일언지하에 일축했고, 경찰은 바로 그날 저녁 해군의 폭파 신청을 허가했다. 어제 제주도지사는 공사 중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 공사장 매립 면허 정지를 예고했다. 전면전을 경고한 것이었다. 싸움은 이제 중앙정부와 제주도 전체 사이로 확전되고 있다. 제주의 봄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가 안보는 국민적 지지와 협력 속에서 지켜진다. 정부는 국토방위와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해군기지가 국토의 분쟁 위험성만 증가시킨다는 주장도 강하다. 충분히 인내심을 갖고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할 일이다. 구럼비 바위에서 철수하기 바란다. 충돌의 모든 책임은 이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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