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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 방사능 위험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나 |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에 유입될 수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 결과를 입막음했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이 저농도이지만 한반도에 날아오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국정원이 대외비를 요청해서 결과를 폐기했다”는 게 환경부 쪽 주장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과학적 조사 결과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틀어막았다는 기막힌 이야기다. 국정원 쪽은 부인하지만, 당시 정황은 환경부 쪽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후쿠시마 사고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부터 수주한 4기의 원전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예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원전이 가장 안전하고 공해 없는 친환경 에너지라며 안전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한국형 원전으로 원전 르네상스를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터였다. 그런 때 후쿠시마 재앙이 터졌다. 원전족들로선 잔칫날 재가 뿌려진 격이니 윤색이 급했을 법하다. 반원전 기류를 차단하고 원전의 위험성을 축소·은폐하는 데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나섰을 개연성이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방사성 물질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걸 알았으면서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상청은 한술 더 뜬 경우다. 조석준 기상청장은 이 대통령의 공항 출국장에서 이례적으로 상황을 직접 보고했고, 이 대통령은 기상청의 보고대로 “편서풍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국내로 유입될 우려가 없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한국 기상청과 달리 일본 기상청은 얼마 뒤 한반도 전역에 일본 남부와 비슷한 방사능이 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 기상청과 노르웨이 기류연구소 등도 한국에 후쿠시마 방사능이 직유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상청의 신뢰도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란이 커졌으나 기상청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기상청의 장담과는 달리 10여일 뒤 강원도에서 방사성 물질인 제논(크세논)이 검출된 데 이어 전국적으로 요오드가 검출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방사성 물질의 경로를 놓고도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북극을 거쳐 남하했다고 하고, 기상청은 그럴 리 없다고 해 한바탕 혼선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008년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민의 불안에, 있을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국가의 직무유기에 대한 분노가 더해져 촉발된 것이었다. 방사성 물질 유입 사실에 대한 정부기관의 조직적 은폐 의혹이 제기된 만큼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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