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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4 19:05 수정 : 2012.03.14 19:0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마침내 오늘 0시부터 공식 발효됐다. 협정에 따라 두 나라간 상품 교역의 장벽은 크게 낮아진다. 하지만 협정은 단지 상품 교역을 자유화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기업 활동은 물론이고 국민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새로운 법과 제도가 협정에 담겨 있다. 이제부턴 협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도 달라져야 한다. 말로만 하는 공방이 아니라 실제 영향을 겪으면서 협정의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할 단계인 것이다.

정부는 주로 공산품과 농산물 관세 철폐 또는 완화를 근거로 경제적 기대효과를 강조한다. 대미 수출 증가에 힘입어 10년여에 걸쳐 국내총생산(GDP)이 5.66% 증가하고, 일자리가 35만개쯤 새로 생긴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효과는 당장 가시화할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반대 쪽에서 주장하는 경제적 피해도 농업부문을 제외하고는 당장 나타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찬반 논란은 경제적 이해득실보다 협정에 담긴 법과 제도의 실제 운영 과정에서 더 많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처음부터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미국 기업과 투자자한테 맞도록 개조한다는 것을 협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우리 정부는 이를 뚜렷한 근거도 없이 ‘선진화의 길’이라며 졸속으로 밀어붙였고, 국회는 여당 날치기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즉 법과 제도의 미국화가 곧 선진화임을 전제로 협정을 추진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현실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4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곳은 한국을 포함해도 7개국뿐이다. 이들 가운데 앞서 미국과 협정을 맺은 회원국들의 경험에 비춰 보면, 다른 회원국들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졌다거나 복지가 향상됐다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국민경제의 불안과 양극화 심화의 증거만 뚜렷할 뿐이다. 더구나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유화와 시장화만 추구하는 법과 제도를 미국 스스로 폐기선언한 실정이다.

협정에 담긴 독특한 법과 제도는 국제적 규범과도 거리가 멀다. 가령 의약품 판매허가를 특허와 연계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선진국 가운데 미국이 유일하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미국식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여러차례 퇴짜를 맞았다. 제소할 수 있는 투자자의 자격이나 제소 대상, 범위 등에서 한-미 협정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미국 법조계에서조차 이단으로 취급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한글본은 분량만 700여쪽에 이르는 거대한 법전이다. 미국에서는 이 협정이 의회와 행정부가 맺은 일종의 양해각서로 취급되지만, 우리에게는 헌법 아래의 최상위 법률로서 효력을 갖는다. 대외협정은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이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 협정의 주요 쟁점에 의견을 뚜렷이 밝혀 국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말꼬리 잡기 식 소모적인 정쟁이나 하는 것은 유권자의 판단만 흐리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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