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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상발전기 먹통인 상태에서 원전 재가동했나 |
고리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갈수록 태산이다. 고리 원전 1호기의 정전사고 때 가동하지 않은 비상 디젤발전기가 지난 15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점검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의 발전기는 지난달 9일 정전사고가 난 뒤 지난달 21일 성능시험을 통과해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에 따라 고리 원전 1호기는 예정대로 한달간의 계획예방정비를 마치고 지난 5일부터 재가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시 고장 판정을 받았다니 원자로가 재가동된 지난 열흘 사이에도 비상발전기가 멀쩡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기간에 외부 전력 공급이 끊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하다.
원전은 전원 공급이 끊기면 냉각시스템이 멈춰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봉 저장조가 과열되고 최악의 경우 노심 용융까지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커진 것은 지진해일로 외부 전력이 끊긴데다 비상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지난달 9일 정전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은 한전으로부터 공급받는 외부전력선이 작업자의 실수로 끊어졌고, 외부 전원이 끊겼을 경우 곧바로 작동해야 할 두 대의 비상발전기가 모두 가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대는 정비중이었고 다른 한 대는 이물질로 밸브가 열리지 않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원전당국은 일본에도 없는 다중전원체계를 갖추고 있어 한국 원전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비상발전기 외에 수동 비상교류발전기까지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난달 9일 밸브 고장으로 정전 사태를 일으킨 발전기가 21일에는 정상 작동했다가 3주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고장이 났다. 수동 비상발전기는 매뉴얼에도 없고 정전 사고 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데도 당국의 안전 주장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지난달 원자력안전기술원이 했다는 점검조차 의심스럽다.
고리 원전 1호기는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넘기고 재가동에 들어갈 당시 대부분의 부품을 교체했지만 비상발전기는 성능에 문제가 없어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드러났듯 발전기 재고 부품들이 오랫동안 창고에 보관돼 있던 상태여서 고장 위험이 상존한다. 고리 원전 1호기는 사고 은폐에 이어 부실점검 의혹, 부품 노후화 등 문제점이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드러난 만큼 재가동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사고 조사 역시 원자력안전위가 아닌 수사기관에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과 지역 주민이 참여해 안전성을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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