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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야권연대의 초심으로 돌아가라 |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일어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쪽의 ‘여론조사 조작 시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경선 상대인 민주통합당의 김희철 의원은 이 대표의 재경선 수용 제안을 일축하고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심상정·노회찬·천호선 후보 등 통합진보당 간판스타들에게 패한 민주당 후보들까지 가세해 통합진보당의 조직적인 여론조사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야권연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사건은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이 기성정치권의 구태를 답습했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에게 깊은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진보정당의 힘의 원천인 도덕성과 정직성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록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 방식에 구조적 맹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진보진영의 도덕성이 도맷금으로 보수세력의 비웃음거리가 돼버린 점 하나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이번 사건의 후폭풍이 총선의 판도를 뒤흔들 만큼 위협적이라는 점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지금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팽팽히 맞설 경우 총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두 당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야권연대의 판을 깨고 공멸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사태를 슬기롭게 봉합하고 다시 단합된 모습으로 총선에 임할 것인가.
먼저 이정희 대표는 진보정당, 나아가 한국 정치의 앞날을 위해 어떤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를 심사숙고했으면 한다. 물론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응하라’고 권유한 행위가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고, 경선 결과를 뒤집을 만큼 결정적인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먼 시야와 긴 호흡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지금 당장은 아프고 억울하더라도 자신을 내던지는 통 큰 결단이 장차 더 큰 열매를 맺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 쪽에도 묻고자 한다. 김희철 의원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도 전에 이미 경선 불복을 선언하고 무소속 출마 방침까지 밝힌 바 있다. 그의 재경선 거부가 이정희 의원과의 대결에 자신이 없어 나오는 과도한 트집잡기로 비치는 이유다. 민주당 후보들이 일제히 이번 사건에 편승해 경선 불복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건을 침소봉대해 정치적 기사회생을 꾀하려는 비겁한 태도다.
두 당이 지금처럼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는 중립적 시민단체 인사들로 이뤄진 야권후보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 쪽에 ‘유권해석’을 내리도록 해 군말 없이 따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당이 눈앞의 조그만 이익보다는 야권연대라는 대의를 충실히 따르는 일이다. 야권이 힘을 합쳐 현 정권의 실정을 심판해주길 바라는 많은 유권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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