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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1 19:06 수정 : 2012.04.02 11:16

참으로 어이가 없다. 뻔뻔하다. 자성은 없고 변명만 있다. 본질은 외면하고 말장난만 판을 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가 뭐라 해도 이명박 정권 들어 자행된 ‘청와대 하명 불법 민간인 사찰’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그리고 청와대가 이 사건을 대하는 자세는 치졸한 책임회피와 ‘물타기’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지난 주말 청와대 하명 불법 민간인 사찰을 증빙하는 문서가 폭로되자, 이들이 회심의 카드로 들고나온 무기가 ‘80%, 노무현 정부 작성론’이다. 청와대가 이런 주장을 처음 하고 난 뒤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 심지어 총리실까지 나서서 80%를 주술처럼 되뇌고 있다. 80%가 노 정부 때 작성됐으니 이명박 정부보다 노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크다는 뜻일 게다. 실제 사찰 문건의 작성 연도를 꼼꼼히 살펴보면, 폭로 문건 2619건 중 그 정도가 노 정권 때 작성된 게 사실이다. 야당과 언론들이 문서 작성 연도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채 문건 전체가 이명박 정권 때 생성된 것처럼 간주한 것은 실수이다.

하지만 80%가 노 정권 때 작성되었다고 해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무게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때와 이명박 정부 때의 사찰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양적으로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노 정권 때는 공직기강 차원의 적법한 감찰을 한 것이고, 이 정권 때는 불법하게 마구 민간인을 사찰한 것이다. 그것도 촛불시위 이후 영포(이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포항) 라인이 중심이 돼 비선조직을 만들어 정권 보위 차원에서 국가기구를 사적으로 악용한 헌정 유린 행위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다고 해도, 입만 열면 ‘과거와 단절’을 외치는 박 위원장이 이런 논리에 가담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한통속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박 위원장이 자신도 사찰의 피해자인 양 주장하는 것도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선거가 코앞에 있다고 하지만, 지금 제기되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사찰 일반’으로 물타기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정보정치·사찰정치의 원조가 아닌가. 더구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역할은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해 풀어내는 것이다. 지금 나약한 민간인이 흉포한 공권력의 횡포에 신음하고 있는데, 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도 피해자’라고 나서는 건 가당치 않다.

이번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면서 가장 참담한 일은 정부·여당의 누구 하나 ‘내 잘못이오’ 하고 자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책임으로 치면 이 대통령이 가장 크겠지만, 2인3각으로 이 정권을 음으로 양으로 뒷받침해온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 그 당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한때 사실상 제1야당 총수, 지금은 ‘여권의 제왕’ 노릇을 하고 있는 박 위원장의 책임 또한 크다. 그렇기에 박 위원장의 태도가 더욱 실망스럽다.

[관련 영상] 박근혜 퉁퉁 부은 손으로 네 번째 손수조 지원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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