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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 걸음씩 진전되고 있는 미얀마의 민주화 |
미얀마에서 엊그제 실시된 의회 보궐선거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할 게 확실해 보인다. 일부 의원들을 뽑는 선거지만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이 22년 만에 제도권 정치에 참여한 이번 선거가 미얀마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민족민주동맹이 압승하더라도 당장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미얀마가 민주화를 향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1988년 민중봉기로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건 네윈의 장기억압체제가 무너졌다.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수치가 그 봉기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유혈진압 뒤 군부통치는 계속됐다. 1990년 총선에서 수치가 이끈 민족민주동맹은 485석의 의회 의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으나 군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했다. 그때부터 서방의 미얀마 제재가 본격화돼 세계 최빈국 미얀마의 피폐는 더욱 심화됐다. 2011년 국내총생산(GDP)은 502억달러, 구매력지수로 환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은 1300달러로 세계 205위다. 군부통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2010년 총선 때 민족민주동맹은 의원직 25%를 군부가 지명한 사람으로 채우게 돼 있는 원천적 부정선거를 거부했고 의석의 75%를 여당이 차지했다. 민족민주동맹의 이번 보궐선거 참여는 그때의 보이콧 전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지만, 여기에는 서방의 중국 견제 전략도 한몫했다. 지난해 3월 의회에서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온건파 테인 세인은 1990년 제재 이후 과도해진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면서 서방의 투자를 끌어들여 경제를 재건하는 데 개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방은 정치적 자유, 경제규제 완화, 소수민족과의 분쟁 해소 등을 제재 해제와 투자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고,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의 현실정치 지분 확보는 그것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그래서 군부가 기득권의 극히 일부만 양보하는 이번 선거에서 민족민주동맹 쪽의 승리를 바랐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전략적 공존’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립 속의 억압 일변도로는 절대빈곤 체제의 안위를 더는 담보할 수 없다는 미얀마 군부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아랍의 봄’ 등 세계적 민중봉기 확산이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도 있다. 군부로서는 ‘미얀마의 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은 여전히 멀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 봄의 중심에 아웅산 수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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