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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추행 피해자를 탓한 공보이사 그대로 두는 변협 |
현직 부장검사가 여기자들을 성추행한 사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엊그제 엄상익 공보이사 명의로 여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취지의 논평을 내놓았다. 기자에게 ‘왜 그런 자리에 응해 수모를 당’했냐는 등 법률가로서 인권의식은커녕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갖췄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내용이다. 변협의 태도 역시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논평이 협회 공식입장이 아니라면서도 누리집(홈페이지) 첫 화면에 이를 게시한 채 아무런 사과도 않다가 언론의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뒤늦게 이를 삭제하고 어제에야 대변인 명의로 사과하는 데 그쳤다. 엄 이사에게는 아무 조처도 않고 있다.
문제의 사건은 부장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여기자 2명의 허벅지를 여러 차례 만지고 다리를 뻗어 몸을 건드리는 등 명백한 성추행을 저질러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당사자들에게 사과한 일이다. 검찰도 해당 검사에 대한 감찰조사에 들어가 엄중 문책할 예정이다. 참석자 누구도 해당 부장검사가 일방적으로 잘못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검사와 기자들이 만난 것은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출입기자단’과 검찰 공보관인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의 공식적인 회식 자리였다. 기자로서는 당연히 취재 활동의 연장이었다. 그럼에도 엄 이사는 “왜 검찰이 언론인과 한계를 넘어가는 술자리를 만들고 여기자들 또한 그런 자리에 응해서 수모를 당하는지 의문”이라며 “권력에 유착해 편히 취재하려는 언론의 일탈된 행동”이라는 등 망발에 가까운 내용을 논평이라고 내놓았다.
더구나 변협 상임이사회에 올려 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공보이사’ 명의로 발표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래 놓고는 “평소 내 소신대로 쓴 것이고 해석은 재량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정의와 인권 측면에서 쓴 것으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성추행의 피해자에게 공개적으로 2차 가해에 가까운 주장을 늘어놓고서 정의와 인권 운운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변호사법과 변호사윤리강령은 모두 제1조에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변호사의 제1의 사명으로 기록해놓고 있다. 변협 임원 중 일부라도 최소한의 인권의식이 있었다면 그런 내용의 글이 논평으로 나오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어제 “대한변협이 논평 작성자와 함께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변협은 사과의 뜻이 없어 보이는 엄 이사를 즉각 해임하고 이와 별도로 엄히 징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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