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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인규 KBS 사장 부끄러움을 안다면 물러나야 |
공정방송 복원과 ‘낙하산’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한국방송(KBS) 새노조의 파업이 오늘로 한달을 맞는다. 한국방송 역사상 최장의 파업 기록이다. 오랜 파업에도 불구하고 그제 드라마국과 교양국 등의 팀장 보직 피디 25명이 김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낼 정도로 열기는 뜨거워지고 있다. 김 사장 체제 아래서 질식당한 공영성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명박 후보 대선캠프의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그가 청와대의 치밀한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방송 사장에 임명됐다는 사실은 국무총리실의 불법사찰 문건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김 사장이 임명되기 두달 전인 2009년 8월25일 작성된 ‘케이비에스, 와이티엔, 엠비시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 문건은 ‘BH(청와대) 하명’으로 분류돼 있다. 청와대가 낙하산 사장을 통해 한국방송을 장악하려 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김 사장 취임 이후 한국방송은 청와대 입맛에 맞는 ‘정권의 나팔수’로 사실상 전락했다. 2009년 12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향보고 문건은 “(김 사장이) 프로그램을 개편, 케이비에스 색깔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 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한 후 수신료 인상 등 개혁과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한국방송은 4대강 사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중요한 의제에서 친정부적 편파·왜곡 보도를 양산했다. 그 결과,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시민들의 야유 속에 쫓겨나기까지 하는 비참함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도 김 사장은 눈과 귀를 틀어막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방송 파행 사태를 수습할 전향적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파업 노조원들에게 징계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외국 언론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 부를 정도의 대형 특종인 총리실의 불법사찰을 단독 보도한 <리셋 KBS 뉴스9> 제작진 11명도 징계 대상자 40명에 포함돼 있다. 상을 주며 칭찬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징계라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불법사찰 보도로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김 사장 체제의 치부를 드러낸 데 대한 보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파업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국방송 기자들이 불법사찰 문건을 확보했더라도 지금처럼 세상에 제대로 알릴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김 사장은 불법사찰 문건의 내용만으로도 이미 공영방송 사장의 자격을 상실했다. 자리를 지키면 지킬수록 무책임하고 뻔뻔스런 인물로 기록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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