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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제는 ‘몸싸움 방지법’ 필요하다더니 |
여야가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폭력사태 근절을 위해 정치권이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내놓은 방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 통과가 눈앞에 닥치자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갑자기 우려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소수당이 지연작전을 펼칠 경우 미합의 쟁점들의 단독 처리가 어려워져 국회가 비능률·비효율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게 비판의 요체다.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중대한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법은 국회 폭력사태의 원인인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극렬한 저지를 막자는 것이 근본 취지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제도 도입, 질서 파괴 의원에 대한 징계 규정 등은 이를 위해 여야가 오랫동안 머리를 짜낸 결과다. 그런데 뚜렷한 대안 제시도 없이 다수당이 마음대로 법안 통과도 못하게 됐다고 푸념하는 것은 ‘강행 통과 옹호론’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회가 의안 처리 기능이 마비돼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일 뿐이다. 사실 겉보기로는 국회가 언제나 폭력과 무질서로 얼룩진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안은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되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의 경우 국회 본회의에서 심의한 법안의 95% 이상이 여야의 참여 속에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는 통계도 있다. 문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5%의 쟁점인데, 이런 사안은 시간 다툼에 매달리기보다는 국민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물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진정한 효율이고 능률이다. 법안 날치기 통과 뒤 우리 사회가 치러온 막대한 비용을 생각하면 무엇이 국회의 진정한 효율성인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수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서도 의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과거 국회 역사를 보면 여당이 막강한 다수를 점했던 때보다 13대 국회 여소야대 시절에 오히려 상임위원회의 의안 처리가 2.47배나 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제는 활발한 대화와 타협이지 다수당의 의석수가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국회법 개정안 하나만으로 국회 선진화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의원들의 자유의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당론으로 속박하는 구조,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보다는 여당에 법안 통과를 지시하는 풍토, 합리적 토론과 대화보다는 비타협 강경노선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회 선진화는 요원하다. 국회법 개정안을 계기로 정치인들의 의식과 정치문화 자체에 큰 변혁의 바람이 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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