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6 19:30
수정 : 2005.08.25 20:25
사설
삼성그룹이 안기부 도청테이프 사건과 관련해 그제 한 사과는 사과로 보기 어려웠다. 사태의 원인을 ‘불법도청과 무책임한 공개 및 유포’로 돌리는 등 진정성도 떨어졌지만, 더 큰 잘못은 사과의 주체였다. 삼성은 ‘삼성그룹 임직원 일동’ 이름으로 사과문을 냈다. 본질을 벗어난 것이고, 삼성 지배구조의 봉건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줄 뿐이었다.
사과 주체는 당연히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어야 한다. 일반 임직원들은 오히려 피해자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에 상처입고, 이번 사태로 받은 정신적 갈등도 적지 않을 터이다. 임직원들이 모두 도의적 책임감을 느껴 사과하는 것이라면 미덕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이 뒷전에 있다면, 그런 미덕은 의미도 없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임직원에는 회장까지 포함된다고 한다면 억지다. 국민에게 사과한다는데 사과받는 국민 중 얼마가 그리 받아들이겠나.
총수가 봉건적 황제처럼 성역이 돼 있는 재벌풍토 탓에 때 삼성 실무진들이 이 회장과 2인자격인 이 본부장을 감히 내세우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된다. 이런 실무진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당사자가 스스로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사안은 뻔한데도 여전히 숨어 있는 건 재계의 거목답지 못하다.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공무원 일동’이 사과하지는 않는다. 대통령과 기업인은 다르다고는 하나 이치는 마찬가지다.
과거 일을 반성하는 게 중요한 까닭은 재발을 막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성이 스스로 진위를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국민이 믿게 행동하길 촉구한 바 있다. 그러려면 반성에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책임있는 사람이 사과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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