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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직업병 인정 암환자가 한해에 고작 25명이라니 |
우리나라에서 직업병 암 환자로 인정받는 노동자가 최근 5년 동안 한해 평균 25명에 그쳤다고 한다. 2009년의 경우 암 환자가 19만2561명 발생하였지만, 직업성 암을 판정받은 노동자는 17명뿐이었다. 직업성 암 승인율이 고작 0.009%다. 유독성 물질이 넘쳐나는 작업장에서 수십년을 일한 노동자가 암에 걸려도 산업재해 판정을 받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셈이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이렇게 외면하면서 선진국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직업성 암 승인이 이처럼 적은 것은 제도가 현실의 뒤꽁무니조차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국금속노조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2010~11년 87개 사업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1만2952개의 화학물질 제품 중에서 발암성 및 기타 독성 포함 제품이 55%에 이르렀다. 1·2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제품만도 12.3%나 됐다니,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발암물질에 노출된 채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이 인정하고 있는 직업성 암은 방사선 피폭에 의한 혈액암, 벤젠에 의한 조혈기계암 등 7가지가 고작이다. 1963년에 만들어진 뒤 50년 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은 기준이다. 정부의 무신경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정부가 인정한 발암물질도 그동안 58종에 불과하다가 지난해에야 간신히 184종으로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은 암에 걸려도 직업병 판정을 받기가 어렵다고 지레짐작하고 산재 신청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한해에 200명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직업성 암 인정 비율은 외국보다 형편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산재보험 가입 인구 10만명당 직업성 암 승인 비율은 2010년에 0.23명으로 프랑스 10.44명, 핀란드 6.53명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암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기 십상이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치료비와 생계비 등을 감당할 도리가 없는 탓이다. 정부는 산재보험법 등을 손질해 직업성 암 인정기준을 넓히고, 발암물질의 종류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또 기업과 함께 발암물질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질의 사용에 적극 나설 필요도 있다. 명색이 경제규모 세계 15위 나라라면 ‘노동보건 후진국’ 신세를 면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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