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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반값등록금’ 약속은 못 지킬망정 ‘벌금폭탄’이라니 |
지난해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에 참석했던 대학생 등에게 최고 500만원까지의 ‘벌금폭탄’이 부과되고 있다고 한다. 반값등록금을 해결하겠다던 정부가 어정쩡한 대책만 내놓고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애꿎은 대학생과 시민들만 처벌을 받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반값등록금 공약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약속을 지키라고 시위했다는 이유로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벌금까지 때리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정부가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현 정부·여당에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아이디어를 낸 반값등록금 공약을 들고나왔다. 이어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민심을 받들겠다며 당 쇄신의 핵심과제로 다시 반값등록금 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러더니 결국 당정협의를 거쳐 지난해 9월 정부 예산 1조5000억원을 투입해 가구소득이 하위 70%인 대학생에게 ‘국가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정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반값은커녕 겨우 12~13% 수준의 인하 효과에 불과한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고는 입을 싹 씻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위에 나선 대학생과 시민들을 강제연행해 모조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해버린 것이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둔 지금, 여야는 자신들이 약속한 대로 대학 등록금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형사처벌 문제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살인적인 등록금 때문에 참다못해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게 아무런 정상참작 없이 마구잡이로 ‘벌금폭탄’을 매기는 것은 모두가 기성세대일 사법당국 인사들이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점심을 거르고 빚을 내가며 학교를 다닌다는 성심여대 4학년 김아무개씨의 사례처럼 상당수 대학생이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에 짓눌려 청춘을 분노와 눈물 속에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제까지 133명에게 15만~500만원씩 1억1295만원의 벌금이 부과됐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시위 주동자가 아니면 대학생에게 기소유예 등으로 관대하게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여당조차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해놓고 단순히 미신고 집회였다는 이유로 거액의 벌금을 매기는 건 야비한 짓이다. 일부 학생들이 정식재판을 청구한다니 법원에서라도 최소한 선고유예 등으로 선처해야 한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판검사라면 법에도 눈물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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