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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리원전 사고 실험의 경고, 경시해선 안 돼 |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을 때의 피해를 예측하는 민간 모의실험 결과가 나왔다. 간추리자면, 고리 1호기에서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정도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는 사고가 났을 경우 급성 사망 4만8000명, 암 사망 85만명 등 최대 90만명이 숨진다고 한다. 신속하게 대피가 이뤄지면 인명피해를 다소 줄일 수 있지만, 경제적 손실은 최대 62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피해 규모다.
환경운동연합과 박승준 일본 간사이학원대학 부교수 등이 진행한 이번 실험은 일본의 원전 사고 평가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으로 국내에선 첫 작업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실험의 정확성이나 결과의 엄정함 등을 놓고 논란이 생길 소지가 없지는 않다. 최대 90만명이 숨진다는 고리 1호기 사고의 경우도 바람이 부산으로 불고 시민들이 피난을 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한계를 트집 잡아 실험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원전 사고 가능성이 0%라면야 기우에 불과하겠지만, 이제는 원전 사고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원전 대재앙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없다는 게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생생한 교훈이다.
모두 21기인 우리나라 원전 중에서 당장 걱정스러운 것은 1978년부터 35년이나 가동된 뒤 중단 상태인 고리 1호기다. 고리 1호기에는 그동안 몇 차례나 ‘경고등’이 켜졌다. 원자로 용기가 수십년에 걸친 방사선 노출로 약화된 사실이 확인됐고, 지난 2월에는 정전사고 때 외부 전원공급장치인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는 아찔한 사고도 일어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떻게든 재가동시킬 궁리만 하고 있다. 게다가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즉시 대피해야 하는 예방적 보호조처 구역, 방사능 유출이 확인됐을 때 대피를 하거나 방호약품을 주민에게 지급해야 하는 긴급보호조처 계획구역 등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안보다 훨씬 원전에 가깝게 설정돼 있다. 사고가 나면 외국보다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시민사회의 경고를 수용해 원전 사고 때 일어날 피해를 예측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아울러 주민안전을 위한 비상계획구역을 국제기준에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초대형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고리 1호기의 폐쇄를 결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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