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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일(현지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면서, 세계인들은 가슴 설렘보다는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그의 취임사엔 ‘자유’란 단어가 27번이나 나오지만 그 진정성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탓이다.
자유를 전파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일방주의적 방식과 기준이다. 2002년 이라크 침공은 대표적 사례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줬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이라크 현실은 미국이 이식한 ‘자유’가 어떤 불행과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부시의 연설을 보면, 자유의 잣대는 미국만이 전유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이건 언제든지 이중 잣대로 사용될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면서,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돕는 파키스탄이나 이집트의 비민주적 체제엔 눈을 감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의사당 광장과 마주 보이는 저 멀리 서쪽 편엔 링컨기념관이 서 있다. 1963년 이곳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자유를 말했다. “콜로라도에서도, 미시시피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자.” 그의 외침은 미국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40년 뒤 부시 대통령의 자유 외침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는 다르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싸늘한 반응이 적지 않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가 미국 안전을 위한 치장거리로 전락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6g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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