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역구도 타파에 대한 노 대통령의 선의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지역구도 타파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도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국가통치의 권력을 주었을 때는 꼭 지역구도 타파만을 주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국민의 뜻을 묻지도 않고 함부로 권력을 넘기겠다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중대한 배신행위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얼른 국정을 인수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한 대목에 이르면 과연 그가 대통령직 수행 의지를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선거구제만 바꾸면 뿌리깊은 지역갈등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는 가정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선거구제 개편이 지역구도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연정만 하면 우리 정치가 제대로 풀릴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장밋빛 낙관론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과거 3당 합당이나 ‘디제이피 연합’ 등 노 대통령이 현재 구상하는 연정보다 훨씬 견고한 형태의 정치적 연합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치문화가 미국과는 다름을 지적하면서 프랑스의 ‘동거정부’를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나 ‘톨레랑스’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야말로 우리와는 전혀 딴판임을 간과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을 “정치구조의 정상화”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정은 정치적 비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정치구조’다. 과연 지금이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할 만큼 위기이고 비상 상황인지 노 대통령에게 묻는다. 만약 그 정도 위기 상황이라면 그 해법은 연정 따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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