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현병철 인권위원장, 청문회 설 자격조차 없다 |
청와대가 엊그제 “국민 인권 보호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을 발표했다. 어이없는 적반하장식 결정이다. 현 위원장이 지난 3년의 임기 동안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뒷걸음질치게 하였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거꾸로 칭찬을 하며 연임까지 시키겠다니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체계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도대체 어디까지 추락시킬 작정인가.
현 위원장의 공과는 ‘인권무시위원회’라는 시민사회의 평가에 압축돼 있다. 현 위원장 재임 시절 인권위는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외면·침묵했을 뿐 아니라 면죄부를 주기까지 했다. 검찰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와 국가정보원의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 김진숙씨의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등에 대한 의견표명 부결 등 인권 역주행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현 위원장의 부적절하고 독단적인 운영에 항의하며 문경란·유남영·조국 등 인권위원 3명과 61명의 인권위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사퇴했을 정도로 인권위는 바람 잘 날이 없기도 했다. 그 결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인권지수와 인권위 위상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애당초 현 위원장은 인권위 수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인권 관련 경력이나 활동이 거의 없었고 인권 감수성 또한 높지 않았다. 2009년 7월 이 대통령이 그를 제5대 위원장에 임명했을 때 국내 시민사회와 국제인권기구에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다.
현 위원장은 연임은 고사하고 당장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인권 후퇴의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청와대가 잘못된 연임 결정을 철회해야 마땅하나, 반인권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이번엔 정치권이 나서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이 손질돼 19대 국회부터는 인권위원장도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현 위원장의 연임 여부에 대한 각 정당의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권의 인권의식 수준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당장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현 위원장을 낙마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도 명확한 방침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한목소리로 현 위원장을 반대해 청와대의 연임 결정 재고를 이끌어내는 게 나을 것이다. 현 위원장은 청문회에 설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인물이며, 그를 상대로 청문회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