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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차기전투기 사업, 다음 정권으로 넘겨라 |
이명박 정부가 무려 8조3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차기전투기(FX) 3차 사업을 임기 안에 강행할 태세다. 이 사업은 2016년부터 고성능 전투기 60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단일 무기로는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이다. 방위사업청은 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18일까지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고 10월에 기종을 결정하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마치 특정 시점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느낌이다. 올해 국방예산(약 32조9000억원)의 4분의 1 이상이 드는 천문학적 규모이고, 한번 결정하면 쉽게 재조정하기 어려운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란 판에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임기말 대형 국책사업은 정치적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결정을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11월 구매계획을 의결한 뒤 1년 안에 계약까지 모두 끝낸다는 계획에 따라,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무기 거래에는 커미션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게 현실이고, 실제 무기 도입 사업 때마다 다양한 이름의 ‘스캔들’과 ‘게이트’가 뒤따랐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더욱 사려깊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종 결정 시점을 10월로 정한 데 대해서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쪽에 ‘선물’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미국보다 우리 쪽이 구매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차기전투기 구입 예산이 줄어들면서 구매하는 쪽보다 파는 쪽의 사정이 더욱 다급해졌는데, 우리가 굳이 시한을 정해놓고 기종을 선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충분하게 협상하면서 기술적 문제점도 꼼꼼히 점검하고, 경제적·법적 문제에서도 충분한 이익을 관철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공군력 차이가 ‘에쿠스’와 ‘포니’ 정도로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에선 북이 연료난으로 비행기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신예 전투기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번 사업의 책임을 지고 있는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이 최근 실질 비행이 아니더라도 시뮬레이터로 평가할 수 있다며 특정 회사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선 엄중한 문책을 해야 한다. 그가 일본도 이 기종을 구매하면서 시뮬레이터로 평가했다고 한 말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정치적 오해를 피해기 위해서라도 이 사업을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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