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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학림사건 무죄, 황우여 대표부터 사과하라 |
대법원이 최근 1980년대 초 대표적 시국사건인 전민학련·전민노련(속칭 ‘학림’)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을 통해 피고인 전원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고인들의 작은 신음에도 귀기울여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과거 재판부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용서를 구할 주체는 현직 재판부가 아니라 당시 법정에서 고문사실에 대한 호소를 듣고도 묵살한 과거 재판부의 판사들이어야 마땅하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고문조작사건에 대해 법원은 재심 법정을 통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왔다. 대법원 차원에서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총괄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판사 개개인은 아무런 반성이나 해명 없이 과거의 치부를 감춘 채 여러 분야에서 영달을 누리며 승승장구해왔다. 이번 사건은 관련 판사들이 정계와 법조계에서 유력한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유독 관심을 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심 배석판사로서 1982년 5월22일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참여했다. 또다른 배석판사는 이강국 현 헌법재판소장이고, 주심은 최종영 전 대법원장이었다.
피고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황우여 대표와 이강국 소장에게 “사죄”를 요구했다. 황 대표는 어제 비서를 통해 “고통과 피해를 입은 분들과 가족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비록 배석판사였고 시대가 그랬다고 해도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고인들을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권유린을 합리화해준 사실은 평생의 멍에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학림사건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가 81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고문조작사건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관들은 피의자들을 최장 44일까지 불법감금한 채 전기고문 등을 자행했다. 검찰로 넘어가서도 이들이 혐의를 부인하면 수사관들이 검사실에 대기하다 보강조사를 했고, 검사는 뺨을 때리거나 남영동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판결문에 나와 있다.
내란수괴 전두환씨가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고 검찰이 여전히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도, 법원이 민주주의 후퇴 상황을 견제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청산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 대표와 이 소장부터 자신의 목소리로 진솔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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