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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피해 노동자를 가해자로 왜곡한 검·경·언론 |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밝혔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가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수사기관이 억울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진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특히 언론까지 가세해 피해 노동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몰아세우는 등 수사기관과 언론의 왜곡 행태가, 사안의 경중은 다르지만 19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비슷하다. 수사 과정에서 현장의 폐회로텔레비전 화면만 제대로 확인해봤어도 성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검찰과 경찰이 ‘악의’ 내지는 ‘고의’로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기륭전자 노조가 이미 밝혔듯이 검경과 언론에 대해 엄중한 민형사상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검경은 이와 별개로 자체 감찰을 통해 이런 황당한 수사의 전말을 조사해 응분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10년 4월6일 서울 대방동 기륭전자 사옥 앞에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해고자 복직 요구 집회를 열다 회사 간부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아무개씨 등 노조원이 동작경찰서로 연행된 뒤 발생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박씨가 형사계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김아무개 경사가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여는 바람에 몸이 노출된 상태의 박씨가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나중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로 실려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씨와 노조 쪽은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며 경찰관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과 검찰은 오히려 박씨 주장이 허위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해버린 것이다. 이에 보수언론들까지 가세해 “‘경찰이 성추행’ 울먹이던 민노총 조합원, 알고보니 거짓말”이라는 등의 왜곡보도를 쏟아냈다.
검경이 얼마나 엉터리로 수사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화장실에서 나오라고 했을 뿐 화장실 문을 연 사실이 없다”는 경찰관 주장과 달리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에는 경찰이 화장실 문을 손으로 잡는 장면과 화장실에서 나온 박씨가 경찰에 항의하는 장면 등이 그대로 잡혔다. 이후 조사받던 박씨가 신음을 내며 손가락이 뒤틀리는 등 이상증세와 함께 실신해 응급실로 이송됐는데도 검경은 오히려 박씨가 허위사실을 날조했다고 기소했으니 ‘적반하장 수사’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게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수사’이기도 하다.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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