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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현희 소동’, 대선 앞둔 종북몰이 속편인가 |
대한항공 858기 피해자 유가족들이 어제 폭파범 김현희씨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씨가 최근 텔레비전에 나와 유가족 등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사람들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발언을 하는 등 사죄·자숙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자 과거 김씨가 작성한 서약서를 공개하며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위원회 등이 조사를 벌인 뒤 조작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 일단락된 사안이다. 그런데 김씨는 얼마 전 종편방송에 나와 과거의 진상규명 활동 자체를 매도하는 듯한 발언과 함께 오히려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며 가족들이 대응에 나선 것이다. 김씨의 주장이 새로운 게 아닌데도 그를 불러내 방송과 신문을 활용해 대서특필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김현희 가짜만들기’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겠다며 이에 맞장구치는 새누리당의 태도에서 ‘안보상업주의’와 ‘종북몰이’ 속편의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대한항공 858기 피격사건은 1987년 11월 발생했다. 대선 직전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탑승자 115명 전원이 숨졌으나 주검을 1구도 거두지 못하면서 여러 의문이 제기돼왔다. 2003년 일본에서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책자가 나온 것을 계기로 피디수첩을 비롯한 국내 언론들이 사건 재조명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2005년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잇따라 재조사에 나서 “김현희가 진범”이라고 결론지음으로써 가짜설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김씨는 몇 년 전부터 “노무현 정부가 해외로 추방시키고 못 들어오게 한 뒤 ‘가짜라서 도망갔다’고 하려 했다”며 “이민을 거부하고 방송 출연까지 거부하니까 1급 보안사항인 살던 집을 방송에 노출시켰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종편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김씨 주장의 진위는 호들갑 떨 필요 없이 국정원이 스스로 경위를 밝히면 되는 일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4년이나 지났는데, 대선을 앞둔 이제 와서 다시 보수언론이 그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순수하게 봐주기 어렵다. “평생을 유가족과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서약했다는 김씨가 과거 국정원의 면담 요청에는 10여차례나 불응하다 다시 등장해 종북주의 운운하는 것도 당혹스럽다. 유가족들이 아직 원한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평생 참회하고 속죄해도 모자랄 가해자가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으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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