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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원춘 사건 두달 만에 다시 신고 묵살한 경찰 |
가정폭력 사건에 경찰이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으나 여전히 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해 경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만만찮다. 지난 4월 이른바 ‘오원춘 사건’ 이후 꾸려진 ‘여성폭력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공동행동’(여성폭력공동행동)은 엊그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수원에서 발생한 112 신고 여성 보복폭행 사건 등 일련의 부실대응을 비판하며 경찰의 대책 촉구를 위한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뜻을 밝히고 나섰다. 가택 진입 과정에서의 손실 보상 문제 등 일부 추가적 제도 정비가 필요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최근의 가정폭력 사례는 기본적으로 경찰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17일 수원에서 발생한 보복폭행 사건은 불과 두달여 만에 ‘오원춘 사건’과 동일한 관내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점에서 경찰의 대오각성이 요구된다.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이 개정돼 경찰은 지난 5월2일부터 집안에 들어가 가정폭력 사건을 조사할 수 있게 됐다. 경찰청은 가정폭력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관이 현장에서 출입문 개방 여부, 출입·조사 가능 여부 등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지침까지 만들어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냈다. 사건의 심각성(8점)이나 피해자 심리상태(4점), 가정폭력 전력(7점), 가해자 성격·심리적 특성(6점) 등을 채점해 16점 이상이면 100m 접근금지 등 임시조처를 취하도록 하는 위험성 조사표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그러나 아무리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놓아도 현장에서 집행하는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책임감이나 인권의식이 부족하면 제대로 실행될 리가 없다. 수원 사건에서도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이 현장 확인도 않은 채 가해 남성과 통화해 “신고한 일 없다”고 하자 오인신고로 처리해버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여성폭력공동행동이 엊그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와 유사한 경찰의 늑장출동이나 부실대응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물론 집안에 들어가다 생기는 손실 비용을 경찰관에게 지우는 내부 규정을 고치고, 경찰의 공무집행에 협조하다 손해를 입은 선의의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문제 등 앞으로 손봐야 할 일이 적잖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가정폭력을 범죄로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인식을 바꿔가야 하는 과제도 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가정폭력과 부실대응 사례가 잇따르는 건 경찰 책임이 크다. 법이 보장한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가정폭력의 상당수는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찰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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