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기부 도청팀장이었던 공운영씨 집에서 나온 많은 도청 테이프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점은 테이프 내용 공개 여부와 범위, 위법 내용에 대한 수사 주체 등으로 압축된다. 논란의 배경에는 검찰에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벌인 여론조사 결과는 좋은 안내판 구실을 한다. 우선 테이프 내용 공개(61.1% 찬성)와 위법 내용 수사 필요성(85.2% 찬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단 내용 공개 범위는 ‘범죄 혐의가 있는 대목’과 ’모든 내용‘이 팽팽하게 맞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검찰 아닌 다른 기관‘(63.5%)이 수사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응답이다. 바람직한 수사기관으로는 ’새 중립적 민간기구‘(41.1%)가 수위를 차지했다.
이미 공개된 테이프 내용에서 봤듯이, 도청 테이프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정계-재계-관계-언론계 유착·부패 구조’를 담고 있다. 이는 관계의 한 축인 검찰이 이번 사안을 총괄하는 조사 주체로는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별검사도 이번의 경우에는 최선의 방안이 아닌 듯하다. 외풍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연루된 만큼 국회가 나설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뿐이다. 유착 고리 바깥에 있는 인사들로 진실규명위원회 성격의 법적기구를 구성해, 테이프 내용을 검토하고 진상 조사 활동을 벌인 뒤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물론 위법적 내용은 검찰에 넘겨 수사하도록 해야 할 터이다.
진실규명위를 구성하려면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과 각 정당의 흔쾌한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사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와 정치의 앞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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