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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원순 시장의 강제철거 제동, 희망이 보인다 |
지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고, 영화 <두 개의 문>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용산참사는 강제철거가 낳은 끔찍한 비극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이들처럼 삶이 뿌리째 뽑힐 처지에 놓인 이들이 제2, 제3의 용산에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소한의 이주대책마저 보호받지 못한 봉천동 세입자들이 강제철거의 위협을 받고 있고,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의 도로 건너쪽 용산3구역도 강제철거가 예고돼 있다.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이러한 강제철거 현황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서울에 봉천구역처럼 강제철거가 임박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합과 세입자를 중재해 강제철거를 막아보자는 박원순 시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앞서 박 시장은 충돌이 예상되던 봉천동 재개발구역의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막고 나서 일단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개입 방침은, 그동안 세입자 문제는 시행사와 조합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던 행정기관이 사태 해결에 나섰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오세훈 시장 재임 때엔 세입자들이 시청이나 구청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 당국은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펼침막을 내붙였다고 한다.
서울시는 구역별로 갈등이 첨예하지 않은 단계엔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이 조합과 세입자 간 타협을 모색하고, 철거가 임박한 곳은 고위 책임자를 직접 협상 중재자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강제철거는 법률에 따라 가능한 조처일 수 있으며, 이미 승인이 나고 관리처분이 이뤄진 이상 시가 할 수 있는 강제력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수십년 살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됐는데도 강제철거라는 폭거에 행정편의적으로 눈을 감아온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박 시장은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강제철거는 안 된다”며 “정 안되면 임대아파트 같은 걸 제시하면서 협상 폭을 넓히도록 하고 부탁이라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개발사업이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온 데 있다. 개발이익은 정부, 관료, 건설회사에 돌아갔지 결코 주민이나 세입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이 조합이 세입자들의 어려운 처지와 무지를 틈타 보상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바람에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기관마저 열악한 지위에 있는 세입자 보호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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