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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일 정보협정, 박근혜 의원의 태도를 주목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처리와 관련해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며 “국회와 국민에게 협정 내용을 소상히 설명해 오해가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절차는 잘못됐지만 필요한 협정인 만큼 재추진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가 이제 와서 한-일 정보협정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일 정보협정은 추진 절차와 내용 모두 국민에게 낙제점을 받은 ‘흘러간 물’이다. 국가간의 협정을 남몰래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곧바로 체결까지 하려다 국민적 철퇴를 맞은 상황에서 재추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몰염치한 짓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국회에서 설명한 뒤 서명을 추진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했다는데, 오만하기 그지없다. 청와대는 협정 재추진 운운하기 전에 외교안보라인 인책 등 책임 문제부터 따지는 게 순서다.
이 대통령이 정보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했고 중국과도 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는데, 전형적인 엠비식 사후약방문이다. 중국과도 체결할 필요성이 있는 조약을 뭐하러 밀실 처리해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나. 일본과의 협정이라는 민감성을 정말 몰랐다는 것인지, 상황을 호도하려는 교묘한 언술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문책할 일이 있으면 문책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공이 국회로 넘어온 이상,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그의 외교안보관, 대일본 외교 노선을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박 의원은 어제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며 “국회가 개원했으니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정 추진을 우려했느냐는 기자 질문에 “걱정했다”며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고 투명하게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지만, 절차의 투명성에 방점이 찍힌 걸로 이해된다.
박근혜 의원은 지금의 한-일 관계를 뒤틀리게 한 장본인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관동군 장교 출신의 박 전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서둘러 정상화하면서 우리 현대사에 숱한 후유증을 남겼다. 박 의원이 아버지의 전철을 또다시 밟을지, 아니면 아버지의 유산을 극복해 새로운 한-일 관계 재정립에 나설지는 그의 대선 가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박 의원의 판단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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