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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실무자에게 ‘외교대란’ 책임 떠넘긴 치졸한 정부 |
청와대가 어제 한-일 군사협정 파문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요점은 그제 사표를 낸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외교통상부 조세영 동북아국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무회의 비공개 의결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인책 차원에서 김 기획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외교부도 조 국장을 전격 경질했다. 결국 김 기획관과 함께 조 국장, 청와대 책임설 제기로 이미 사의를 표명한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을 인책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조처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무대책·무책임으로 점철됐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영토 갈등이 상존하는 한-일 사이에 ‘군사’라는 말이 들어간 예민한 협정을 얼렁뚱땅 맺을 수 있다고 덤벼든 것이 무능이라면, 국무회의의 밀실처리가 밝혀진 뒤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무대책과 위기관리능력의 부재를 보여준 것이다. 또 협정 상대국과 협정 조인식을 하기 1시간 전에 취소 통보를 한 ‘외교 참사’를 저질러 놓고도 실무자 몇 명을 희생양으로 삼고 끝내려는 건 무책임과 몰염치의 극치다.
이 사건의 본질적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 당시 국외 순방 중이었다고 해서 나라 사이의 중요한 협정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 모면될 순 없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5월13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협정을 맺기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문제의 협상을 체결하기로 한 것이 본질이지 국무회의 처리를 공개했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이다. 오히려 책임을 피하려고 국외에 있는 동안에 비공개 처리를 ‘주문’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김 기획관의 전횡 뒤엔 언제나 이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김관진 국방장관과 김성환 외교장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두 장관은 협정 문안을 4월23일 가서명을 통해 확정해 놓고도 5, 6월 두 차례나 국회를 찾아 설명을 하면서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국회와 협의를 하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인데, 계속 그러라고 격려라도 할 참인지 의문이다. 야구 경기에서도 큰 실수가 발생하면 사인을 잘못 낸 감독이 책임을 지지, 지시를 따른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진 않는다. 이번 일을 처리하는 이 정부의 수준은 일개 야구단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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