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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찰 총수가 불법 저지른 미군을 두둔하다니 |
주한미군 헌병들이 우리 민간인들을 불법연행해 물의를 빚고 있는 상황에서 김기용 경찰청장이 엊그제 미군 헌병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이 불법체포를 당해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했다니 과연 경찰 총수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미 헌병들이 우리 민간인들에게 수갑을 채운 채 미군기지 정문까지 끌고 가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도 하지 못한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건은 경기 평택의 미 공군부대 정문 앞 주정차 금지구역 안에 세워진 차를 치우는 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미군 헌병 3명이 양아무개씨 가게 앞에 주차된 차를 옮기라고 요구해 양씨가 “짐을 옮기려고 잠시 세운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으나 거듭 이동을 요구해 결국 차를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도 헌병들이 가게로 들어와 양씨에게 수갑을 채웠다는 것이다. 미군들은 이를 보고 항의하던 행인과 양씨의 동생에게도 수갑을 채웠다. 우리 경찰관이 출동했는데도 미군들은 수갑을 풀지 않고 150m 떨어진 부대 정문으로 끌고 갔다 40여분 뒤에야 풀어줬다고 한다.
당시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면, 왜 제대로 사법권을 행사하지 못하느냐고 따지는 행인에게 경찰관이 우린 힘이 없다는 투로 반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을 명백하게 위반했는데도 무기력하게 대응한 경찰의 행동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소파 규정에는 ‘미군이 위해를 느끼는 등 위급상황에서 현행범에 한해 한국인을 연행할 수 있으나 한국 경찰관이 오면 즉시 신병을 인계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비난여론이 일자 미7공군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이 잇따라 사과하는 등 미군 쪽은 파장을 누그러뜨리려 애쓰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경찰 조사에서 미 헌병들은 “성난 군중 때문에 신변 위협을 느꼈다”며 정당방위라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문제는 경찰 수뇌부의 태도다. 김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미군이 한국인을 끌고 간다고 경찰이 즉시 (불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장 화면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 주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주어진 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해놓고 사후 수사 단계에서까지 이렇게 저자세로 일관하니 “이완용 총리대신 내각에서 경찰청장 하시던 분이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미군 헌병뿐 아니라 현장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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