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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문고리 권력’ 비리 어물쩍 넘길 건가 |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흔히 ‘문고리 권력’으로 불린다.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방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부속실장은 대통령의 일정을 챙기고,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각종 보고서를 총괄 관리한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을 면담하려면 부속실장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가 권력의 서열’이라는 정치권 속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권력에 줄을 대려는 인사들이 늘 부속실장을 유혹 1순위로 삼는 이유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장학로 부속실장과 노무현 대통령 때의 양길승 부속실장이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 물러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줄곧 대통령의 문고리를 지켜온 김희중 제1부속실장도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한테서 억대의 금품을 받은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엊그제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 정부 아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가 이 대통령의 턱밑까지 파고들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김 부속실장은 이 대통령의 초선 국회의원 시절부터 시작해 15년 동안 곁을 지켜왔다.
이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까지 부패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통탄을 넘어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김 부속실장과 청와대의 태도다. 그는 “금품을 수수하지 않았지만 저축은행 건으로 이름이 거명된 데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러나는 이유가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다. 뒤가 구리지 않다면 결백을 입증해 명예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이다. 도의적 책임이라는 상투적 언사로 잘못을 가리려는 얕은 술수에 속아 넘어갈 국민은 없다.
김 부속실장의 비리에 입을 굳게 다문 청와대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애초 김 부속실장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가, 사의가 표명되자 태도를 바꿨다. 김 부속실장이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조사할 방법이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비리 확인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발을 빼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아무리 외면한다고 해도 김 부속실장의 비리는 어물쩍 피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대통령을 15년 동안 보좌한 문고리 권력의 비리가 불거진 이상 청와대는 먼저 내부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바른 절차다. 아울러 검찰이 눈치보지 않고 김 부속실장을 조사할 수 있도록 진실 규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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