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1 19:54
수정 : 2005.08.01 20:06
사설
국가정보원이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사건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아직 조사 중이라고는 하지만 조사 결과의 점수는 낙제점에 가깝다. 사실 국정원은 입이 열이라도 할말이 없는 형편이다. 불법도청의 시작에서부터 뒤처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구석 국가 최고 정보기관다운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국정원은 국회 보고에서 “도청 테이프가 274개 외에는 없다” “다른 테이프 복사본이나 유출본도 없다”고 말했다지만 누가 이를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이제 국정원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 어렵게 됐다.
국정원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적 이유는 지나친 폐쇄주의, 비밀주의에 있다고 본다. 국정원은 그동안 ‘보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모든 접근을 한사코 봉쇄했다. 심지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마저도 국정원이 하는 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개혁은 이런 폐쇄주의를 깨뜨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번 도청사건 수사에서부터 과감히 ‘성역’을 깨야 한다.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면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일도 결코 망설여서는 안 된다. 2003년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 수사 때 검찰은 국정원의 ‘위상’을 고려해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잘못된 배려가 국정원을 망친 주범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어제 국회에서 “과거의 잘못을 거울 삼아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김 원장의 발언에서 국정원이 저지른 과거의 가장 큰 잘못이 폐쇄주의였다는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원의 개혁은 이 기구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끌어내 제도적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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