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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남표 총장 사퇴, 또 어물쩍 미뤄지나 |
어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이사장 오명)가 애초 예정됐던 서남표 총장의 계약해지 안건을 의결하지 않았다. 대신 오명 이사장에게 서 총장의 거취를 포함한 모든 결정권을 일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지난해 봄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자살한 뒤 공론화된 서 총장의 전횡 문제를 이번에도 속시원하게 매듭짓지 못한 셈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카이스트 이사회가 서 총장 안건을 의결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이사회가 해임을 강행할 경우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서 총장의 강경 태도가 부담을 준 모양이나, 그래도 카이스트의 혼란을 해소하려면 계약해지 의결이 올바른 길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서 총장의 사퇴가 또다시 어물쩍 미뤄진다면 이사회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서 총장은 특허권을 둘러싸고 진행중인 카이스트 교수들과의 소송을 조기 사퇴 불가의 이유로 들고 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첫째가 2006년 취임 뒤 줄곧 보여준 독선과 불통이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한 서 총장은 학생과 교수 등 카이스트 구성원들을 동반자로 삼기는커녕 그저 자신의 개혁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대상으로만 간주했다. 성적에 따른 등록금 차별부과, 100% 영어 강의, 재수강 제한 등의 조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그 오만과 불통이 결국 꽃다운 젊음들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비극을 낳았다.
서 총장은 또 카이스트 총장 임명권을 쥔 이사회 이사들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추천해 대학을 사조직화한다는 비판을 사왔다. 지난해 4월에는 교수·학생이 참여하는 ‘혁신비상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애초 약속과 달리 1년이 넘도록 이 위원회의 의결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혁신비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설치된 대학평의회의 심의·의결 기능을 없애고 자문기구인 교수평의회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결과로 서 총장은 무엇보다 신뢰를 잃었다. 지난 5월 총학생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서 총장의 사퇴에 찬성하는 학생은 74%에 달했다. 같은 달에는 교수 수십명이 그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교내 행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수들의 시위는 1971년에 이 학교가 생긴 이후 초유의 사태다. 이렇듯 구성원들의 신뢰를 상실한 총장이 ‘지성의 전당’을 이끌 수는 없는 일이다.
서 총장이 주장하는 소송은 언제 최종 결론이 내려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오명 이사장은 멈칫거리지 말고 서 총장의 퇴진 절차를 진행해 카이스트의 진통을 하루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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