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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제 이슈로 커져가는 ‘삼성 백혈병’ 문제 |
산업·환경 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 최신호가 한국인을 표지모델로 실었다고 한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23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황유미씨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작업장 안전 문제를 죽음으로 공론화했고, 유족들의 질긴 법정투쟁 끝에 지난해 법원에서 반도체공장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당사자다.
저널은 또 사설에서 ‘삼성 백혈병’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고,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등 의사 4명이 함께 작성한 논문도 게재했다. 이들은 2007~2011년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진단된 17명의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을 분석한 뒤 “반도체공장에서의 노출과 질병과의 원인 관련성을 공식적이고 독립적인 연구로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작업장에서 일한 여성들이 평균 28.5살의 젊은 나이에 대규모로 백혈병에 걸리는 것은 이례적이나, 노동자들이 사용해온 유해화학물질과 작업환경 등의 정보를 회사 쪽이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학술지가 삼성 백혈병을 비중있게 다룬 것은 관련 학계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방증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유방암, 악성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등으로 숨진 사람이 56명이나 되는데도 직업병 여부가 몇 해째 논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삼성이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나, 정부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격’에 비쳐볼 때 낯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1월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이 선정하는 ‘세계 최악의 기업’ 온라인 투표에서 삼성전자가 3위를 차지한 것도 백혈병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설이다.
삼성 백혈병은 이처럼 국제 이슈로 커져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게걸음 상태다. 엊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삼성 백혈병 산재소위를 구성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은 재계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위를 구성해 백혈병 문제를 국회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삼성도 반도체공장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객관적인 작업장 실태조사를 벌이는 것이 옳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매출 92조2700억원에 영업이익 12조5500억원의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경영진의 훌륭한 능력이 큰 몫을 했겠으나,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밑바탕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더욱 존중되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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