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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16과 유신헌법 논란에 끼어든 교과부 |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검정교과서에 5·16과 유신헌법의 교과서 기술 내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주문이 출판사에 전달된 것이 지난 20일이었으니 박정희의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첨예해졌을 때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는 5·16과 유신체제에 대한 역사인식을 놓고 곤경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때 교과부가 정치 쟁점에 뛰어든 셈이니, 선거 개입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다. <한겨레>의 거듭된 확인 요청을 받고도 민간 단체인 ㈔한국검정교과서에 그런 요청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고 펄쩍 뛰었다는 게 교과부다. ㈔한국검정교과서가 역사 교과서를 내는 출판사에 보낸 업무연락에는 “교과부 요청에 따라 조사하고자 하니 협조 바람”이란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교과부 교과서 기획팀에 전달됐다는 진술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거짓말이 체질화됐거나 탈법적인 일을 하려 했거나 둘 중 하나다.
나중에 교과부는 사회적 논란이 있는 대목이어서 현황을 알아보려 한 것뿐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은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박 후보의 주장에 대한 역풍이 심해지자, 이런 여론의 뿌리가 교과서에 있다고 판단하고 대책을 강구하던 중이었다. 교과부의 자료 수집 행위는 이와 잘 조응한다. 게다가 이 일이 있기 직전 정부는, 도종환 시인이 야당 국회의원이 됐다는 이유로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려 했다. 보수적인 문인까지 나서서 비판하는 통에 방침을 철회하긴 했지만, 명백한 정치적 교과서 재단이었다. 도 시인의 시는 이미 10년 전부터 교과서에 실린 터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범으로 나섰지만, 교과부를 의심하는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실태파악 지시를 보면서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의 교과부는 집권 첫해부터 역사 교과서 내용을 뒤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학계의 연구 결과와 공인된 절차를 묵살하거나 유린했다. 국사 교과서 출판사에 장관의 수정명령권을 발동했으며, 국사 교과과정을 서둘러 개편했고, 집필기준과 검정기준을 학계의 반대와 논란 속에 일방적으로 수정했다. 이렇게 개정한 주요 내용엔 5·16 군사정변 따위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 흐름에 이번 확인 작업도 올라 있다. 게다가 ㈔한국검정교과서는 검정교과서 출판사들이 판매와 유통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기구다. 이런 기구까지 동원했으니 그 의도가 너무나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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