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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영환 고문, 중국과 우리 정부의 책임 무겁다 |
중국 공안에 넉달 가까이 구금됐다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충격적인 고문 상황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김씨의 폭로로, 중국 당국의 야만성과 우리 정부의 무책임성이 동시에 드러났다. 외국인에게 버젓이 고문을 자행한 중국에는 이런 정도의 인권감각으로 어떻게 세계의 지도국이 되겠다고 하는 건지, 자국민의 고문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한 우리 정부에는 국가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씨는 최근 언론과의 잇단 회견에서 고압 전기봉, 구타, 잠 안 재우기, 수갑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전기고문을 당하기 전엔 심전도와 결핵 검사까지 받았다고 하니 철저하게 준비된 만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더욱이 김씨는 고문 사실을 2차 영사 면담 때 전달했고, 1차 면담 땐 얼굴에 구타 흔적도 있었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고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씨는 풀려난 뒤에도 정부 당국자로부터 고문 사실 공개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석방 조건에 고문 숨기기를 포함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운 행동이다.
중국 외교부는 어제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해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인 사건 연루자의 합법 권익을 보장했다”며 고문이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도 전날 김씨를 “중국에서 북한 정권 전복 활동에 종사하다 중국 당국에 체포된 인물”로 묘사하며 우리나라 안의 문제제기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외교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우리 정부도 뒤늦게 과잉대응에 나섰다. 이제까지의 신중한 자세에서 벗어나 외교통상부가 어제 중국에 수감된 625명에 대해 전원 영사면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씨의 고문이 초점이 되고 있는 마당에 중국 내 수감자 전원을 영사면담해 가혹행위 여부를 파악하겠다는 건, 마치 한 응급환자가 실려왔는데 모든 병원을 뒤져 같은 유형의 환자를 찾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과 같다. 냉정함이 필요하다.
정부는 중국과 김씨 석방을 교섭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대중관계의 중요성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무엇보다 김씨의 빠른 석방에 중점을 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인류 보편 가치인 인권을 저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유효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인권과 대중관계를 동시에 살리는 방향에서 김씨 고문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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