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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증세 시늉만 낸 세제개편안 당정협의 |
정부와 새누리당이 어제 당정협의를 통해 올해 세제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현행 14%에서 15%로 높이고,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금액을 낮추는 것 등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동안 부자감세로 비난 받던 정부·여당이 이 정도나마 증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증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 부자증세에 별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증세 시늉만 낸 느낌이다.
우선 증세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정부·여당은 대기업의 최저한세율 인상 등으로 연간 1조8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200조원이 넘는 올해 국세 수입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종합부동산세 무력화를 시작으로 법인세 인하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0조원이 넘는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감세할 때는 이렇게 대규모로 해놓고 고작 1조8000억원짜리 증세안을 내놓은 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딱히 부자증세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대기업의 최저한세율 인상으로 더 걷히는 세금도 1000억원 정도뿐이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던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도 별 진전이 없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도 현행 연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추는 데 그쳤다. 주식양도차익 과세도 해묵은 과제인데 과세 범위를 조금 확대하는 선에서 그칠 모양이다. 여론을 의식해 부자증세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속 빈 강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골프장 개별소비세를 감면하려는 건 좀 뜬금없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처들은 자칫 내수 활성화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한 채 부유층이나 집부자들의 세금 부담만 덜어주고 끝날 수 있다. 내수 활성화 효과에 확신이 없으면 손대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나마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세제 지원을 강화한 것 등이 눈에 띈다. 이번에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것보다 연금으로 받는 게 더 유리한 쪽으로 제도를 바꾼 것이나 역모기지 소득공제 대상 기간을 확대한 것 등은 긍정적이다.
복지수요 확대에 부응하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늘어나는 세금은 여력이 있는 계층이 더 많이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세제를 개편해 이를 관철해야 하는데 정부·여당은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부자 정권’의 한계이겠지만 앞으로 부족한 재원을 어디서 충당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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