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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리 1호기, 전력난 구실로 재가동 안 된다 |
정부가 여름철 전력 수요 급증을 내세워 사고가 잦은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한다. 어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달 중순이 올여름 중 가장 전기 사정이 어려운 때가 될 것이라며 고리 1호기를 8일께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정전 사고 은폐가 뒤늦게 밝혀져 5개월째 가동이 중단된 고리 1호기는 중대 사고와 본질적 결함으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원전의 생명인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력난을 구실로 재가동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고리 1호기가 전체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가 전체 원전 54기를 중단하고도 대규모 정전사태 없이 지나온 것을 보면, 전력난의 카드로 고리 1호기 재가동 문제를 꺼내는 것은 너무 얕은수다. 고리 1호기보다 설비용량이 큰 월성 1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지난달 말부터 가동돼 정전사태 가능성은 낮아진 상태다.
정부는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안전점검을 다시 한 결과 재가동에 합의했다고 하나, 재점검마저도 기존 고리 1호기 안전점검처럼 비밀리에 진행됐다. 또 인근 기장군민들과 비공개 합의를 진행했다는데, 안전 문제는 기장군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 시민 전체의 문제다. 부산시와 부산시의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 고리 원전 반경 30㎞에는 3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국민의 80%가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국내 전체 원전 고장·사고의 20%가 집중될 만큼 문제투성이다. 지난 2월 비상디젤발전기가 먹통이 돼 하마터면 원자로 내의 열을 식혀주는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후쿠시마처럼 원자로가 녹아내릴 뻔했다. 무엇보다 압력용기가 뜨거운 열에 약해져 깨지기 쉬운 위험한 상태라고 한다. 2007년 설계수명을 연장할 당시에도 원자로가 파괴 시험을 견디지 못하자 비파괴검사인 초음파 검사를 통해 편법으로 수명을 연장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전력 과소비국으로, 소비를 줄일 여지가 곳곳에 있다. 전력 수요 증가세를 그대로 반영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이달 중순 전력 예비력이 150만㎾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데, 최근 폭염의 고비를 산업체 휴가 분산, 조업 조정, 민간 발전기 가동으로 잘 넘겼듯이 적극적인 수요관리와 절전으로 대처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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